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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역시 총칼로 무장한 괴한에게 습격 당해 귀가 잘리고 측두골이 깨지고 얼굴과 목에 상흔을 입어 거의 죽을 지경에 이르렀다.
군산으로 옮겨 상처 부위를 치료했으나 점점 상처가 깊어가자 미국으로 건너가 치료를 하게 되었다.

2년 후 완쾌되어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포사이트 선교사는 목포 선교부에서 일하게 되었다.

하루는 광주에서 일하는 윌슨 선교사로부터 전보가 왔다.
내용인즉 농촌을 돌아다니며 전도한던 오기원 선교사가 열병에 걸려 생명이 위독하니 빨리 올라오라는 것이었다.
그는 자기의 검은색 조랑말을 타고 급히 60마일이나 되는 광주를 향해 출발했다.
때는 1909년 4월의 봄!..... 날마다 푸름을 더해 가는 들녘과 진달래꽃이 곱게 피어있는 산등성이를 지나 13마일 남아 있는 지점에서 예기치 못한 일이 벌어졌다.
길가에 사람이 쓰러져 있는 것이었다.
포사이트 의사는 말에서 내려 그 사람을 살펴 보았다.
중증인 여자 한센병 환자였다.
손과 발은 퉁퉁 부어 상처투성이었고, 그녀가 걸친 누더기 옷은 피와 고름으로 얼룩져 있었다.

위독한 동료 선교사의 병을 고치러 가는 바쁜 몸이지만 죽어 가는 환자를 그냥 놔두고 갈 수 없었다.
그 환자를 등에 업고 나서 말에 태우고 자기는 마부가 되어 앞에서 끌며 광주에 도착했다.
포사이트는 윌슨에게 찾아가 치료를 부탁했으나 거쳐할 곳이 없어 치료를 할 수 가 없었다.
선교사들끼리도 그런 환자를 데려온 포사이트를 원망하는 눈치였다.

고심한 끝에 광주 동남쪽에 위치한 벽돌 굽던 가마가 생각났다.
환자를 그 곳에 옮겨두고 선교사들이 쓰던 침구와 옷가지를 주어 거처하게 한 후, 날마다 다니면서 치료해 주고 복음도 전해 주었다.
이것이 광주 한센병원의 시작이었다.

윌리 해밀턴 포사이트 선교사는 5년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우리나라에 머물렀지만 고아와 과부 그리고 한센병 환자를 위해 생명을 걸고 헌신했던 의사다.
한센병 관리사업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의 당시 상황으로서는 의술이나 환경적인 측면에서 열악성을 면치 못하여 누구든 사회적으로 소외되고 혐오감을 주던 환자들을 위해 목숨을 걸고 그들을 돌보기가 쉽지 않았다.
그렇지만 머나먼 땅에서 그것도 의사신분으로, 포사이트 선교사로 기영한 공로는 극히 지대하며 후세에 길이 남을 족적을 남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911년 고향으로 돌아가 남은 생애를 허약한 상태에서 고통에 시달리다 지친 육체를 더 이상 가누지 못하고 45세의 짧은 생애인 1918년 5월 9일 영면했다.
그 후 광주 한센병원의 환자들이 그를 못 잊어 지금의 호남신학대학 구내에 십시일반 모금한 돈으로 9척 크기의 기념비를 세워 그 뜻을 기렸다.


- 복지 2000년 1.2월호에서 -